담장을 허물다

서상호 기자 | 기사입력 2019/06/11 [13:03]

담장을 허물다

서상호 기자 | 입력 : 2019/06/11 [13:03]

 담장을 허물다

 

▲ 구자선 작가

도서관에 간다.
 대단한 공부를 한다거나 시험 준비라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게 있어 도서관은 혼자 시간 보내기 딱 좋은 쉼터이다. 혼자서도 외롭지 않은 곳, 혼자서도 우아해질 수 있는 곳, 폼 나게 앉아서 책을 볼 수 있고, 춥거나 덥지 않게 알맞은 온도로 쉬어 갈 수 있는 곳이다.


 책과 책 사이를 오가며 제목을 훑어보고 작가가 누구인지 살피면서 익숙한 작가의 책에 손을 얹는다.

 

 오늘은 공광규 시인의 ‘담장을 허물다’라는 시를 읽는다. 담장을 허물고 나니 텃밭 육백 평이, 백 년 된 느티나무가 통째로 내 안에 들어온다는 이야기다. 어디 그 뿐인가,


 금강으로 흘러가는 냇물과 논 수십 마지기와 들판을 가로질러 무량사로 가는 국도와 월산과 청태산까지 내 소유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뿐만 아니라 구름과 해와 달과 은하수까지 내 마음 대로 부릴 수 있을 것만 같은 호기까지 담고 있다. 그저 담장을 허문 것뿐인데, 나는 천하를 다 가진 부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포부쯤은 가지고 있어야 넉넉한 것 아닐까? 갑자기 나도 부자가 된 것처럼 무량하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행복한 삶이란 어떤 것일까? 누군가는 멋진 옷으로 치장하며 행복해 하고, 때로는 자동차를 바꾸고, 집을 넓히면서 행복해 한다. 그러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고 자기의 소욕을 넓혀간다.
 부자가 되면 행복할까? 가끔 드라마를 보면 호화로운 2층 집에 아줌마를 부리면서 식사를 하고 며느리를 데리고 쇼핑을 나가는 장면을 본다.

 

 요즘 드라마의 대부분 회장님 집은 그렇게 살고 있는데, 그들은 행복할까?
 하지만 드라마 속에서는 우리네 보다 더 많은 고민과 고통 속에서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것을 만나기도 한다. 누군가는 가진 것이 없어서 초라하다고 한다.


 내놓을 것이 없어서, 손에 쥔 것이 없어서 부끄럽다고 한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쥐고 싶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두 손 가득 쥘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고작해야 까만 봉지 몇 개뿐이 아닐까? 세상에 소중한 것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까만 봉지 몇 개에 만족한다는 것일까? 돌아보니 그 동안 까만 봉지 몇 개 쥐려고 아등바등 살아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찢어진 까만 봉지 몇 개를 손에 쥐고 걸으려니 부스럭거리기만 하고 거추장스럽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도 담장을 허물어야지. 물질의 소욕을 넘어 마음의 양식을 넓히기 위해 시간을 보내고 돈을 소비한다면 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손에 쥔 몇 개보다 마음으로 넓혀가는 지식을 쌓아 가고, 여행을 하면서 눈을 넓혀가고, 사람을 만나면서 새로운 영감을 경험하는 일, 그렇게 내 시간을 만들어가고 소비한다면 작은 공깃돌 몇 개로도 한 세상 즐거운 놀이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아이가 여행을 가거나 어딘가를 가려 할 때에 엄마들은 이렇게 말한다.

“좋은 시간 보내고 와.” 나도 가끔 아이에게 말한다. “즐겁게 지내고 와.” 라고.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에 보낼 때에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좋은 시간 보내고 와.” 라고.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인생이라는 삶을 살아갈 때에 좋은 시간,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오라는 바람을 담아 우리를 세상에 보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우리는 잠시도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좋은 시간으로 행복한 시간으로 보낼 권리가 있는 것이다.

 성경 말씀에 ‘너희가 근심함으로 너의 근심을 한 자라도 덜 수 있다면 근심하라.’ 나는 가끔 내 안에 근심이 다가올 때 이 말씀을 되뇌어 본다. 근심은 내 근심함으로 사라지는 게 아니다.

 다만 마음에서 생각을 바꾸거나 거꾸로 생각할 때에 그 근심이 친구가 되고 가끔은 한 순간에 해결되기도 한다.
 
근심을 털어낼 용기, 근심을 마주할 작은 불씨 같은 힘이 솟아날 때 근심은 어느새 친구가 되어 있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죽을 것만 같았던 지난날의 근심이 이제는 기억도 없이 사라진 대부분의 경우를 만나기도 한다. 그래서 솔로몬의 반지에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나를 얽매고 있던 세상의 소욕에서 잠시 담장을 허물어 본다. 내 작은 몸으로 가질 수 있는 몇 가지를 손이 아닌 가슴에 담으며 세상을 본다.

 세상엔 내 것이 아니어도 내 것처럼 가질 수 있는 것들이 사방에 널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이는 물질의 소욕을 넘어 보이지 않는 내면의 소욕을 욕심내 보자고 새해 다짐처럼 첫 장에 큼직하게 써 넣는다. ‘담장을 허물다.’ 라고. 아침 한 나절 잠깐 들른 도서관에서 나는 오늘 담장을 허물고 세상으로 간다.

 

 

 

※ 본 칼럼은 본 지 편집방향과 다를수있습니다.

 

서상호 기자 shseo6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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