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스님, 용서, 화해라 쓰고 자비라고 부른다

동국스님 | 기사입력 2019/06/03 [10:44]

동국스님, 용서, 화해라 쓰고 자비라고 부른다

동국스님 | 입력 : 2019/06/03 [10:44]

 

▲  동국스님


산사(山寺)로 드나드는 일주문이 ‘불이문(不二門)’이다. 세속과 성(聖)의 경계면이요,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시공간을 안내하는 건축물이다.


산사에서 삶과 죽음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방천화극을 들고 중생들을 향해 노상 소리 지르는 사천왕들은 기가 막힌다.


인간들은 더 이상 그들에 말에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다. 중생들은 귀를 틀어막고 서로 다투고 빼앗고 온갖 악행을 일삼는데 시간을 허비한다.


사천왕들은 풀벌레가 우는 따가운 햇볕 아래에서도 중생들이 용서, 화해, 자비를 지키는지 무서운 눈초리로 지켜본다.


사천왕의 고함소리는 시공간을 허무하게 되돌아오지만, 23억 만년의 주술과 마법에 빠진 구봉산은 이런 딱한 사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만 오늘도 그 존재의 푸르고 고요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새소리가 잦아드는 구봉산 솔숲에서 향내를 한껏 맡아본다. 자연은 단순하고 명징해서 좋다.


사물에 대한 인간이 가진 소유의 로망은 오래가지 않는다. 소유욕과 현란한 장식의 껍데기를 넘어서 이제는 마음 근본에 신경 쓸 차례다.


마음은 너무 깊이 생각하면 심신이 지치고 피로해진다.

현대인은 바닥을 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바람에 자신을 끝없이 소모시켜 버린다.


우리 마음에는 신(神)의 성품이 배면에 숨어있다. 그 성품은 온갖 탁한 것들로 가려져 있어서 마음은 늘 어수선함 속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나를 버리고 내려놓아야 한다. 모든 건 한낱 마음이 지어낸 것일 뿐임을 안다면 이미 진리의 세계로 들어갈 채비를 갖춘 것이다.


사람은 손이나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만나야 한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행동은 허공에 마냥 손짓하는 것처럼 무의미하다.  인간을 향한,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자비다.


사랑으로 베푸는 가슴을 자비다. 요즘 정치권의 세력구도가 바뀌어서 정계가 어수선하다.
정치 지도자들에게는 소통의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다. 갈등과 반목, 대립의 분위기를 화해와 통합으로 엮어내야 한다. 국민에게는 지금 위로가 필요하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내려놓고 베푸는 마음을 내보여야 통(通)이 이뤄진다.


 “그대는 어느 곳에서 이 밤중에 왔는가?” “저는 그지없이 고요하고 한없이 넓은 허공과 한 몸이 되었는데 어찌 오고 감이 있겠습니까? 다만 어진 선비가 뜻이 깊고 무거우며 덕행이 높고 굳세다는 말을 듣고 보리심(菩提心)을 이루도록 돕기 위해서 왔습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노힐부득(신라 승려)과 낭자(娘子; 관음보살 화신)의 문답이다.


보리심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자비의 마음이다.

자비와 사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짝임에 분명하다. 인간은 부성애보다 모성애가 강하다고 한다.


시인 고은은 어머니를 두고 끝없는 어머니의 사랑을 표현하려고 보살이라고 했다.
불교에서 보살은 한량없는 대자비심을 갖는다.


인간사 아무리 힘들어도 자비와 사랑으로 가득한 모성만 있으면 다 해결된다.
자비는 화해와 용서의 시작이다. 무릇 머리로 많이 생각하고 계산하는 사람은 상대를 용서하지 못한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쳤고 부처님은 자비경(慈悲經)에서 보편적 사랑을 이야기했다. 어쩌면 이러한 경문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무릇 도 닦는 승려나 목회자도 마찬가지다.
연일 뉴스지면을 가득 메우는 사건 사고는 우리들의 피로를 가중시키고 날씨와 미세먼지로 불쾌지수는 더 높아지고 있다.


이 모든 어려움들이 각자의 종교 안에서 원만히 해결될 수 있을까? 모름지기 마음 씀씀이가 답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근본 마음을 바르게 잡고 자비와 용서로 서로를 위로해야 한다.

자비의 마음은 늘 인간을 향해 열려있어서 사람들 간에 용서와 화해를 이끌어준다. 
 마음이 올곧은 사람은 용서함에서 편안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사소한 일에 마음이 휩쓸리지 않는다. 마음을 제어하면 정신세계는 자유로워진다.


올곧은 사람은 생을 살면서 손해 보지 않을 것이고 뭇사람들로부터 의인으로 존경받게 됨은 자명하다.

우리는 각자 마음을 청정하게 닦고 마음을 바르고 곧게 다듬어야 한다.


결국 마음 닦인 자가 선지식인(깨달음의 지견을 얻은 자)이다. 작은 일에 연연하지 말고 넓게 보는 눈을 가지고 볼일이다.

※본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수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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